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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에베소서 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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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셨네" 찬송가의 역사에 대해

4월 8일 오늘의 교회사

루터란 교회의 미주리 총회의 최초 의장, 카알 발터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카알 발터(Carl Ferdinand Wilhelm Walther, 1811년 10월 25일~1887년 5월 7일)는 두 가지 결정적 사건들을 직면했습니다. 그는 루터란 교회의 미주리 총회(Missouri-Synod)의 최초 의장으로서 신학자였습니다. 하나는 마틴 스티븐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칭의를 받았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발터는 폐결핵으로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회복하는 6개월 동안 그는 연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마틴 루터의 작품들을 읽었습니다. 그는 루터란 신학이 올바르다는 강력한 확신에 차게 되었고 ‘협화신조’(Book of Concord)와 ‘아우쿠스부르크 고백서’(Augusburg Confession)와 같은 신조가 올바르다는 확신에 차게 되었습니다. 이런 확신을 갖게 되자마자 또 다른 위기를 직면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한 동안 개인교수직을 맡았는데 그러면서 작센 왕국의 목회직도 함께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교회 지도력은 이성주의적 견해를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성경의 무오설을 믿지 않았다는 것이죠. 전통적 루터란주의와 정면으로 위배되었습니다.

 

발터는 약 750명의 목회자들과 힘을 합쳐 미국으로 이민했습니다. 마틴 스티븐의 인도로 이들은 미주리 주 세인트 루이스 근교에 정착한 후 발터를 의장으로 삼았습니다. 의장이 된 발터는 루터란 교회의 ‘미주리 총회’를 개최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많은 설교를 행하면서 앞으로 컨콜디아 신학교로 발전하게 될 ‘통나무 대학교’(log college)를 설립했습니다. 청중들에게 그는 강조하기를 역사적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1570년에 작성한 루터란의 신앙고백인 ‘협화신조’를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단의 바른 신학을 위해 힘을 쏟다가 건강을 잃고 말았습니다. 독일로 돌아가 휴양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1860년 부활절 바닷가에서 그는 유명한 찬송을 쓰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잘 아는 “부활하셨네!”(He Is Risen)입니다.

 

그분은 부활하셨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부활하셨네!

성육신 하신 그분은죽음의 감옥문을 여셨네. . .

갈보리에서 저주에 대해 승리하셨네.

창조의 주님은 나무에서 못 박히셨네. . .

하지만 승리하신 구세주는 부활하셨네.

죽음, 지옥, 그리고 사탄은 추방당했고 저주를 정복하셨네.

 

발터는 미국으로 돌아와 세인트 루이스에 있는 트리니티 루터란 쳐치에서 46년 동안 설교하면서 컨콜디아 신학교에서도 가르쳤습니다. 76세의 나이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라은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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