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맘 울리는 이야기

가장 훌륭한 선교사

조회 950|2019-06-30

노네임드

사진 출처 -Newsmission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성경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쇄국정책으로 선교사들이 조선에 갈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기독교를 전파 할수 있었던 건 한글로 된 성경 덕분이었다.

존 로스는 선교사가 조선에 갈수 없는 지금 가장 훌륭한 선교사는 조선말로 된 성경이라고 생각했다. 

 

존 로스(John Ross, 1842-1915)선교사로 인해 우리는 처음부터 한글로 된 성경을 가질수 있게 되었다.

 

존 로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로 최초로 한국어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글래스고 대학교와 에든버러의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신학을 공부하던중 선교의 마음을 품게 되고

스크틀랜드 장료 교회 해외 선교부에서 존 로스를 중국 선교사로 선택했다.

존 로스의 언어 습득 능력이 매우 뛰어 났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30세의 나이에 중국의 선교사로 가게 되었다.

중국에서 사역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출산휴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아내와의 사별로 인한 고통 가운데 있지만 

선임선교사로 부터 대동강에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조선에 대한 선교의 열정이 붙는다.

 

 

로스 선교사는 두 차례나 만주 심양 봉황성의 고려문을 방문해 조선 선교를 모색했다. 

거기서 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등을 만나 한국어를 익히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로스는, 

매제 매킨타이어와 함께 1879년 이들 4명의 한국인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그들의 도움을 받아 한글성경 번역에 힘썼다.

 

로스는 이들과 함께 3년만인 1882년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1883년 사도행전, 1884년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을 각각 한글로번역, 출간했다. 

첫 한글성경이 번역된지 5년 만인 1887년, 최초의 한글 신약성경인 <예수셩교젼서>가 탄생했다.

고려문 접경지대의 조선인들과 한글교사들은 자연스레 복음을 듣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존 로스 선교사가 아닌 번역을 도왔던 조선인들이 주도적으로 성경을 전했다. 

이처럼 현지인들에 의한 복음의 자발적인 수용은 국내 최초의 신앙공동체의 형성으로 나타났으며, 거주선교사 없이도 괄목할만한 신앙공동체로 발전하게 되는 요인이 되었다. 

일례로 1887년 가을, 언더우드가 의주로 제1차 순회전도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는 100명 이상의 세례 지원자가 있었다. 

그리고 1889년 4월, 언더우드가 신혼여행을 겸하여 순회전도여행을 갔을 때는 33명의 의주사람들이 압록강을 건너가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도 하였다.

 

한글 성경으로 인해 빠르게 기독교는 전파되었고 세계에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성경책이 다르게 보이지 않는가?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기8:7) 

 

자료출처 - 위키백과, 선교한국


 

댓글 0본인 삭제 0 댓글운영정책
0/300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