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충전 C포스트

하나님의 임재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라. |

조회 2,892|2020-01-28

오피니언

은밀한 곳에서 기도하라.


은밀한 기도를 소홀히 하는 일, 즉 하나님과의 교통도 없고, 닫힌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분명히 인식하라. 

그런 사람들이 하는 일은 모두 오로지 사람들 앞에서 하는 일일 뿐이다. 그것은 위선자로 의심되는 징표이다. 왜냐하면 신앙의 본질 중 상당 부분이 마음과 골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시선은 골방에서 당신을 향하고 있다. 만일 당신의 눈이 그분을 향한다면, 당신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은혜의 탁월함은 은밀한 죄와 은밀한 기도에 대해 깨어 있는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

 

 

 


 

온전한 마음으로 기도하라. 

 

은밀하게 기도는 하지만, 진실한 마음 없이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라. 아마샤는 기도하였지만 온전한 마음으로 하지는 않았다(대하25:2). 아합은 슬프게 울었지만 그의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다. 그들이 기도할 곳을 찾는 것은 오직 양심의 괴로움을 누그러뜨리기 위함이다. 그들은 오직 텅 빈 기도의 형식에만 안주할 뿐, 기도의 황금관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하늘의 생수를 맛보는 것에는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

  

깨어 분발하여 기도하라. 기쁘게 살기를 원하는가?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은밀한 기도를 지속하여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얼굴을 알아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빛나는 그분의 눈의 광채를 바라보라. 그토록 영광스러운 분이 골방에서 당신을 만나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은혜에 젖어 있는 사람이 골방에서 만나는 눈부신 아름다움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골방에서 나올 때 차라리 눈을 감으라. 고귀한 영혼이 골방에서 본 것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들은 시시하고도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오, 하나님과 살아 있는 교제를 나누면서 맛보는 감춰진 만나의 달콤함이여! 그것은 성도를 위해 마련해 둔 별미이다. 당신의 영혼이 그것을 맛보고 즐기기를 바란다.

 

은밀한 기도 중에 서로 충돌하는 영혼의 고뇌와 기쁨을 모두 숙고해 보라. 확신을 불러 일으키는 두려움, 우리를 높여 주는 겸손, 담대하게 만드는 떨림, 한밤중에도 밝게 빛났던 구름 기둥, 밝게 빛나는 어둠, 천상의 교제로 가득한 고독, 기쁨으로 흘러 넘치는 눈물, 추수 때의 시원한 바람 같은 거룩한 한숨, 영적 건강의 징후인 아픈 탄식, 영혼의 활기를 보여 주는 거룩한 움츠림, 오스틴은 거룩한 사랑에 대해 “그것은 내 영혼의 부담, 나를 온통 들뜨게도 하고 가라앉게도 한다”라고 말했다.

  


 

 

 

천상의 황홀한 기쁨을 생각하라.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지켜 지상의 헛된 일에 유혹당하지 않게 하고, 세상의 즐거움에 대해 눈을 감게 만든다. 쾌락 그 자체를 혐오하도록 만드는 것이 영혼의 기쁨이다. 그에게는 그리스도만큼 아름다운 것이 전혀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비할 바 없이 귀하다.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 곧 하나님의 낙원 한 가운데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보다 더 달콤한 것이 어디 있을까?

 

되돌아 오는 보상을 생각하라.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사랑과 자비만큼 심령을 소생시키고 즐겁게 하는 것은 없다.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왕의 진미와 호의가 베풀어지기 때문에, 기도하는 자녀들에게는 윤택한 은혜가 있다. 우리의 골방 기도가 우리의 사업장과 배와 경작지와 우리가 아끼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쳐 그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복된 향기를 맡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오, 당신이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면 부지런히 은밀하게 기도하라.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의 생명력과 기쁨이 향상된다.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기도를 매우 기뻐하신다고 친히 선언하셨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천사는 기도하는 다니엘의 방으로 ‘신속하게’ 날아 왔다.

 

 

하늘의 영광을 묵상하라. 

 

그것에서 우리의 모든 기도가 찬양으로 변할 것이다. 땅에서 우리가 내뱉는 기도의 한숨이 하늘의 찬양의 악보에서는 ‘강세(accent)’로 변할 것이다.

 

- 존 프레스톤 외, 「기도의 영성」, pp 32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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